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톈진 조약 (문단 편집) === 의의 === 어떻게 보면 별 내용없는 조약이지만 조선의 종주권에 대한 규정이 딱히 없어 청의 종주권이 인정되는 셈이었으며 위안스카이 등 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조선은 한러밀약 같은 타개책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파병 시 상호통보 조항은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의 원인이 된다.[* 물론 일본군의 파병근거로 활용된 것은 제물포 조약이다.] 1894년 발생한 [[동학 농민 혁명|동학농민운동]] 농민군이 차례로 조정군을 상대로 승리하게 되고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되니, 조정이 청군에게 진압요청을 하게 되어 청군이 조선땅을 밟게 된다. 하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일본군 역시 제물포 조약을 근거로 즉각 발효 직후 중에 도중 파기하며 조선에 상륙하게 된다. 사실 일본은 [[갑신정변]] 이후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해 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군은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아산만에 상륙하였지만 일본군은 아산만이 아닌 인천에 상륙 후 서울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인천에 상륙한 5월 6일로부터 이틀뒤인 5월 8일. 조정은 '농민군을 진압하였으니 외국군은 철수하라' 는 명분을 위해 농민군과의 [[전주 화약]]을 체결했지만 때는 늦어 조선을 노리던 청과 일본 양국이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청은 패배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계기로 더이상 조선에 간섭할 수 없게 된다.[* 청은 일본에게 배상금, 타이완, 랴오둥 반도를 넘기게 되고 다시는 조선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골자.] 참고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할 줄 알았던 일본은 [[삼국간섭]]에 의해 한발 물러서게 되는데[* [[러시아]]를 필두로 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서양 3세력이 일본에게 가한 외교압력.], 후일 앙심을 품은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바로 [[러일전쟁]]이다. 한국사만 공부하는 일반적인 학생은 이 후자만 알면 되지만, [[동아시아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위 2개 다 알아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